신세계, 잊지 않겠다.

작년 송년회 때 상품으로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받았다. 난 본디 뽑기 운이 촘 있는 편인 거 같은데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거기 상품 중에서 이게 제일 좋은 거라서;; 여튼 받긴 받았으되 난 다이어리를 거의 쓰지 않고 또 선물 받은 다른 다이어리도 있었기 때문에 스타벅스의 다이어리는 일년 내내 한 번도 펼쳐지지 않은 채 그냥 내 방 어딘가를 굴러다니고만 있었다.
그리고 얼만 전에 알았다. 그 안에 쿠폰이 있어! 쿠폰이 있어!

ㅠ_ㅠ

사용기간은 10월 31일까지. 뭐야? 이 애매한 날짜는? 신세계놈들 잊지 않겠다.


엄마가 정신분석을 의뢰했습니다.

1.
한때 촘 살았던 여파로 나와 모친의 눈은 더럽게 높다. 나야 내 인생의 반에 반 정도만 잘살았고, 백화점의 물건들이 나에게 쌍욕(이 거지년! 꺼져! 넌 나를 살 수 없어! 그 더러운 눈길을 나에게 스치지도 마!)을 한 세월이 길었으므로 익숙해졌지만 모친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에게 쌍욕하는 물건들에게 맞욕은 하지 않는데 모친은 다르다.

현대백화점에서 5마넌 이상 구매하면 주는 아리따 그릇 세트를 탐낸 모친은 나를 끌고 무역센터 현대점에 갔다. 모친은 5마넌짜리 뭐 하나만 딱 사서 그릇 세트를 받아올 예정이었지만 그럴 수 있을리가? 사실 모친이 10마넌이나 20마넌, 혹은 30마넌짜리를 집었어도 나는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친이 지나가면서 집은 건 가장 싼 것이 105마넌, 가장 비싼 것이 285마넌이었다. 이것은 척 봐도 비싸보이는 밍크와 명품 매장 외의 것이므로...뭐 비싸긴 비싸다.
모친은 가격표를 확인할 때마다 점잖고 생기발랄하게 욕을 했다. 신기했던 건 욕하는 대상에 성별이 있었다는 거다. 어떨 때는 '이 죽일 놈들' 어떨때는 '이 죽일 년들' ...나는 대상이 누군지 궁금해졌지만 항상 그렇듯이 질문하지 않았다. 뭐 어디선가 누군가의 장수프로젝트는 항상 진행되고 있는 거니까.



2.
난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뭐랄까 내 안에 있는 어둠... 그러니까 검은 밤, 밤보다 더 검은 바다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는데 삭막한 도시를 지나온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와 머리카락을 날리고 그 순간 그 바람 안에 느껴서는 안 되는 온기를 느껴버렸을 때의 절망 같은 어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솔직하기 어렵다. 나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여튼 어제는 아마 그런 이야기를 조금 한 것 같은데 그 결과로 모친은 진지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돈 벌어서 내 돈으로.



3.
친구한테 저 이야기를 했더니 왜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와야하냐고 물었다.

친구 : 왜 하필 바람은 서쪽에서 부냐?
나 : 내가 오른쪽 얼굴보다 왼쪽 얼굴이 더 이쁘거든.
친구 : 도대체 왜 서쪽이 네 왼쪽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나 : .....???

난 내가 알고 있는 것의 이유를 대부분 설명하지 못한다. 맞는 것도 설명하지 못하는데 틀린 걸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어. 하지만 바람은 서쪽에서 불어야만 해.

절대미각

1.
어느날 부터인가 커피가 맛이 없어졌다. 첫날은 그냥 하도 처묵처묵해서 입맛이 떨어졌나 싶었고 둘째날은 설탕 대신 꿀을 넣어서 그런가 싶었으며 세째날은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 : 모친, 커피 다른 거 싰어?
모친 : 응. 아라비카 어쩌구가 나왔길래 그거 사봤어. 그거 아니? 아라비카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커피 품종으로 맛있고 몸에 좋고..쏼라쏼라 꾸왈라.
나 : -_- 맛없어.
모친 : ......나도 알아.

아니까 저렇게 길게 이야기했겠지.


2.
떡볶이가 언젠가부터 무척 먹고 싶은데 우리 집에서 떡볶이를 사다 먹으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한다. 뭐 걸어나가도 1.7km 정도만 걸으면 되지만 왕복 3.4km를 걷고 먹는 떡볶이가 너무 맛있을까봐 도저히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만들었다!!

요런 보글보글 간지. 청량고추 송송송.
이때쯤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음.

BUT
완성 간지. 맛있어 보이지 않음ㅠㅠ.


문제는 이게 맛있어 보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도 맛이 없었다는 거.
고추장, 조청, 양파, 라면, 양배추, 케찹, 간장, 설탕, 오뎅 다 넣는데 왜? 왜? 왜? ......아아, 미원을 안 넣어서? 음식은 좋은 재료면 된다더니 난 안 되는 거야??



자다 일어난 부친  : 나 떡볶이 먹어야해?
나 : ...아니, 안 먹어도 될 것 같아.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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